🎬 정의란 무엇인가: 영화 <데시벨> 리뷰
잠수함 침몰과 연이은 테러 사건.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한 남자의 고뇌.
영화 <데시벨>은 단순한 재난·액션 영화가 아니라, ‘정의’와 ‘희생’이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 국가란 무엇인가: 채상병 사건이 떠올랐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작년 채상병 사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국가는 위기를 감추려 하고, 진실은 묻힌다. <데시벨>의 배경인 ‘한라함 침몰’ 역시 마찬가지다.
자국의 무기에서 발사된 어뢰가 사고의 원인이었음에도 국방부는 은폐로 일관하며 구조조차 외면한다.
이 영화는 무언가를 '덮으려는' 시스템, 그리고 그 안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공리주의의 그림자
영화 속 핵심 장면은 산소가 부족한 잠수함 안에서 ‘절반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지시다.
지휘관 강도영은 제비뽑기를 통해 일부를 희생시키는 결정을 내린다.
이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룬 공리주의 딜레마와 겹쳐진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켜도 되는가?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당한 자들과, 그런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던 자.
그리고 그 선택에 끝내 저항한 전태성.
모두의 입장이 너무나 이해되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사람을 쉽게 비난할 수 없었다.
🧨 테러는 복수인가, 정의인가
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전태성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그는 체제에 의해 동생을 잃었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에 분노한다.
그의 타깃은 군과 국가다. 그가 만든 ‘데시벨 폭탄’은 단순한 물리적 파괴가 아니라
‘소리 없는 진실’을 폭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가족조차 위험에 빠지는 상황은, 전태성 역시 정의와 복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 “정의는 무엇인가” 다시 묻게 하는 영화
나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2~3번 읽었었다.
그때는 이론이었다면, <데시벨>은 그 이론이 현실에서 얼마나 잔인하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실감나는 시뮬레이션이었다.
강도영은 영웅인가, 살인자인가.
전태성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이 영화는 단 한 장면에서도 쉬운 답을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끝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 정리하며
<데시벨>은 겉으로는 재난 액션이지만, 속으로는 철학적 딜레마가 중심인 영화다.
극단의 선택을 요구받는 위기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국가의 책임, 그리고 개인의 분노가 어떻게 충돌하고 왜곡되는지를 보여준다.
제목에 집중하기보다는, 내용 전체가 던지는 메시지를 음미해야 할 영화였다.